하루 만에 지은 나의 두 번째 뇌
AI 에이전트 생태계 구축기· 5 / 10
클로드로 나만의 AI 생태계를 지으려던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선 두 번은 전부 조직(비서·팀·자동화)부터 세우다 멈췄다. 이번엔 순서를 바꿨다. 조직이 아니라 자산(파일)부터 세우고, 조직은 그 위에 나중에 얹기로 했다. 2026년 7월 6일 밤의 회고 대화에서 시작해 7월 8일 하루 만에 첫 컴파일까지 간 기록이다.
두 번의 좌초가 남긴 자리
앞의 두 시도를 모르는 채로도 이 글이 성립하도록, 무엇이 왜 멈췄는지부터 짚는다.
- agent-system(2026-06-24~07-07, 동결): 비서·팀·채널·검증 조직을 먼저 지었다. 지식창고는 그 조직의 부속으로 밀려나 2주간 쌓인 지식이 쪽지 6장뿐이었다. 가치가 배선(설정·연동)에 의존하는 구조라 중간 상태를 검증할 길이 없었고, 그 사이 “완료됐다”는 오보가 두 번 나왔다.
- 연습용 second(2026-04-26~05-07, 정지): 카파시(Karpathy)의 LLM Wiki 패턴을 충실히 따라 34페이지를 만들었지만 일주일 만에 멈췄다. 로그를 실측해보니 입력 6건 대 조회 2건 — 입력만 있고 출력이 없었다. 그 폴더 안에서 세션을 열어야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격리 구조라, 다른 프로젝트를 개발하던 나는 애초에 쓸 일이 없었다.
즉, 두 실패는 원인이 다르지만 결과는 같았다. 자산이 조직의 부속이거나, 자산이 격리돼 있거나 — 둘 다 지식이 살아 있는 자산이 아니라 죽은 창고였다.
회고, 원래 원했던 것을 다시 꺼내다
7월 6일 밤, 새 시도를 시작하기 전에 대화로 먼저 되짚었다. 원래 원했던 건 비서가 아니라 지식이었다.
“나의 모든 ai 활동(개발, 질문, 지식습득, 나의 패턴과 루프 등)을 계속 누적하고, 누적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래프처럼 엮는 나만의 지식기반을 만들고 싶은 게 핵심이었어.”
실패 원인도 스스로 두 축으로 갈랐다. “나의 아키텍처·감독 능력의 문제 반, Claude 구현 품질의 문제 반.” 구체적 고통은 넷이었다.
- 검증 불가: 중간 상태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 속도로 인한 길 잃음: 진행이 너무 빨라 방향을 자주 놓쳤다.
- 당장 쓸 알맹이 부재: 2주를 들여도 쓸 만한 지식이 없었다.
- 배보다 커진 배꼽: 비서를 쓰려는 건지, 비서라는 피규어를 만들려고 내가 다 손수 만들어주는 건지 헷갈렸다.
이어 방향을 선언했다.
“브리핑, 정부지원 알림 이런 거 헤르메스한테 시켜도 돼. 근데 정말 나를 위한 나의 뇌를 만들고 싶어. 내가 평소에 개발하는 모든 프로젝트, 나의 개발 스타일, 나의 일상 스타일, 나의 지식, 내가 유튜브로 보고 온 것들을 담아서 지식으로 남겨둘 공간 (…) 그냥 단순히 쌓기만 하는 게 아닌 그래프처럼 엮는 나의 알고리즘을 만들고 싶어.”
이 한 문장이 새 프로젝트의 범위와 본질을 확정했다. 비서 업무는 완성형 제품(헤르메스)으로 분리하고, 이 프로젝트는 지식만 다룬다. 그리고 지식은 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엮여야 한다.
직접 쓰지 않아도 되는 뇌
방향은 정해졌지만 설계는 아직이었다. Claude가 그림을 잡으려 하자 오히려 막혔다. “내가 지금 뭘 원하는 건지 혼동이 와. 너가 잡아줘.” 그 과정에서 나온 한마디가 이후 모든 설계를 규정했다.
“내가 직접 작성하라고? ㅡㅡ 그럼 또 주저앉게 될 거야.”
수기 의존이 곧 이 시도의 사망 조건이라는 것이 이 한마디로 확정됐다. 캡처 마찰 허용량은 0이어야 했다. 이 제약에 대응해 나온 답이 “동작 0” 모델이다 — 활동마다 트리거는 말 한마디뿐이다.
- 개발: 그냥 개발한다. 세션이 끝나면 배운 것과 삽질, 선호가 자동으로 뇌에 떨어진다.
- 유튜브: 링크를 던지며 “봤어” 한마디면 되고, 안 해도 시스템은 죽지 않는다.
- 정리: “정리해” 한마디로 실행한다.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결과물을 읽고 “맞네” 혹은 “이건 아닌데”라고 판정하는 것 — 쓰는 사람이 아니라 검수하는 사장이 되는 구조다.
격리라는 병, 그리고 기획을 먼저 요구하다
골격도 직접 다시 짰다. “뇌를 채울 리포를 딱 1개만 별도로 두는 거야. 시스템도 아니야 그냥 처음에는 창고 같은 서재 리포야. (…) llm wiki 방식으로 만들어. (…) 훅을 하나 만들어서 모든 작업이나 대화 뭉치를 해당 리포에 쌓게 하는 거야. (…) 내가 코덱스를 쓰든 클로드를 쓰든 모든 내용이 다 그 리포를 향하게 하는 거야.” 이어 스스로 6단계로 정리하며 다섯 번째를 “★가장 중요”로 짚었다. 입력만이 아니라 출력 — 다른 리포에서 세션을 켜도 이 지식을 활용한 답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격리의 정체를 스스로 짚었다.
“생태계는 결국 그 생태계(agent-system 리포) 내에서 세션을 켜야 비서가 되는 건데, 즉 생태계가 너무 격리되어 있는 거야. (…) 여러 곳에서 지식을 인풋받고 여러 곳에 아웃풋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격리는 회로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격리된 회로는 그 회로 안에서만 전류가 흐른다. 스위치를 다른 방에서 눌러도 이 방의 전구는 켜지지 않는다. 연습용 second가 바로 그 회로였다 — 지식이라는 전류가 자기 폴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번엔 격리 해제, 즉 어느 방에서 스위치를 눌러도 이 회로에 불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 자체가 프로젝트의 핵심 산출물이 됐다.
설계 방향이 잡히자 바로 구현으로 가고 싶어졌지만,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바로 구현하기보단, 일단 전체적인 기획을 해야 하지 않겠어? 이러다가 또 대충 만들게 될 거 같은데.” 이 요구로 기획서(Phase 0~6·완료기준·결정기록)와 헌법이 먼저 박제됐다.
기획 과정에서 판단을 뒤흔든 질문 하나가 더 있었다. 세션 전문(transcript)의 부피가 122MB, 그중 90%가 파일 덤프·툴 출력·시행착오 같은 노이즈라는 걸 확인한 뒤 물었다. “판단이라는 게 학습하면서 좋아지나?” 답은 아니다였다. 매 세션은 같은 성능의 카메라와 같다 — 렌즈의 해상력이 세션마다 좋아지는 일은 없다. 세션이 거듭돼 자라는 건 카메라가 아니라 필름(재료: profile·위키)과 노출 기준(무엇을 남기고 버릴지의 규칙)뿐이다. 그리고 이 둘은 전부 파일이라 검증할 수 있다. 이것이 agent-system이 팔았던 “자가학습으로 복리 성장한다”는 환상과의 결정적 차이다. 태도를 교정한 순간도 두 번 있었다.
- 묻지 말고 판단해서 제안하라: “자꾸 나한테 ‘뭘로 할래’ 묻지 마라. 네가 기획을 다 했고 뭐가 맞는 방향인지 알 텐데. 나는 둘의 차이를 모른다.”
- 확정된 로드맵은 끊지 말고 실행하라: “구현해. 자꾸 끊지 마라. 계속할 수 있는데 왜 끊냐. 내가 필수로 확인해줘야 할 때만 끊어라. 기획이랑 로드맵 이미 다 짜놨잖아.”
하루 만에 Phase 0에서 첫 컴파일까지
기획이 끝나자 실제 실행은 7월 8일 하루 만에 끝났다. 뇌 리포 안에는 원본을 그대로 쌓는 보관소, 정리된 지식이 모이는 위키, 아직 소화되지 않은 세션이 쌓이는 대기열, 그리고 점검·정리 자동화 스킬 두 개가 들어선다.
Phase별 완료기준은 전부 내가 직접 실측했다.
- Phase 0 — 기획 박제: master-plan과 헌법을 완성해 승인받았다. → 통과.
- Phase 1 — 리포 골격: 지식 창고 리포를 만들고 유튜브 클립 하나를 실제로 수확해 확인했다. → 통과.
- Phase 2 — 입력 배관: 세션이 끝나면 자동으로 큐에 쌓는 훅(
harvest-session.sh, AI 호출 0)과, 다른 리포에서도 “적어둬” 한마디면 메모가 남는 규칙을 걸었다. → 통과(세션 5건 적재, 메모 5장, 권한 프롬프트 0회). - Phase 3 — 출력 배관(환류), 이 프로젝트의 승부처: 어느 리포에서 세션을 열든 시작할 때 profile과 색인을 자동으로 주입하는 훅(
reflux-session.sh)을 걸었다. second가 아닌 다른 리포의 새 세션에서 실제로 그 내용을 아는지 확인했다. → 통과. - Phase 4 — 정리 스킬 배치: 점검(lint)과 정리(compile) 두 스킬을 뇌 리포 안에 두고, 안전한 점검을 먼저 무거운 정리를 나중에 실행하게 했다. → 통과.
- Phase 5 — 첫 컴파일 착수: “정리해” 한마디로 실행했다. 큐에 쌓인 세션 10건 중 파일이 남아 있는 5건만 대상이 됐고(나머지는 삭제돼 스킵), 그중 3건은 증류하고 2건은 폐기했다(사유: 알맹이가 0이었거나 이미 다른 메모에 반영된 중복분). 위키 6페이지, profile 12줄 이상 성장(전부 근거를 각 줄 주석으로 남김), 점검까지 클린 통과. → 통과.
기획 단계에서 세운 규칙(“가치는 배선이 아니라 파일로 존재해야 검증할 수 있다”)에 스스로 점수를 매기면, Phase 0~5 전부 파일과 실행 결과로 완료기준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절반은 확실히 지켰다. 다만 첫 컴파일의 속도 문제처럼 다듬어야 할 흠은 그대로 남았다. 최종 판정은 이랬다.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으나 다듬어나가는 특성이니 냅두고 합격.”
게이트 G1(컴파일 합격 2회가 자동화 착수 조건)은 이날로 1/2을 채웠다.
조직이 아니라 자산부터
건물을 지을 때 배선부터 완벽하게 깔고 방을 하나도 안 채우면, 정작 그 집에 살 수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반대로 방부터 가구로 채우면 당장 살아보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안다. 두 번의 좌초는 전자였고, 이번은 후자였다.
착지한 교훈은 넷이다.
- 조직보다 자산이 먼저다. 지식 시스템의 가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데이터 축적에서 나온다.
- 가치는 파일로 실재해야 검증할 수 있다. 배선에 의존하는 가치는 중간 상태를 확인할 길이 없어 “완료” 오보를 낳는다.
- 수기 의존은 설계를 결정한다. “그럼 또 주저앉게 될 거야” 한마디가 캡처 마찰 0이라는 제약을 못박았고, 그 제약이 훅 기반 자동 수확이라는 구체 설계를 낳았다.
- 판단력은 학습으로 늘지 않는다. 매번 같은 성능의 카메라로 시작하는 세션에 기대하지 말고, 검증 가능한 필름과 노출 기준이 자라게 설계해야 한다.
물론 자산부터 세우는 쪽의 대가도 있다. 초기엔 도구가 빈약해 보인다 — 비서도, 자동 브리핑도 없다. 하지만 대가를 알고 감수하는 것과, 실패를 모른 채 같은 순서를 세 번째 반복하는 것은 다르다. 이번엔 그 대가를 먼저 알고 들어갔고, 그래서 하루 만에 첫 컴파일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